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루이나 계승전쟁/전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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=== 양측 전력 === ||<tablealign=center><tablewidth=100%><tablebordercolor=#536349><#536349> {{{#fff '''구분'''}}} ||<#536349> {{{#fff '''벨포르 연합'''}}} ||<#536349> {{{#fff '''은사슴단'''}}} || || 투입 || 기병 2개 중대 {{{-2 (약 240기)}}} || 집적소 경비대 {{{-2 (약 180명)}}} || || 무장 || 기병 소총, 권총, 도검 || 구형 소총 || || 휴대 장비 || 석유, 도화선, 폭약 소량 || - || || 지원 || 없음 {{{-2 (단독 작전)}}} || 인근 수비 병력 약 400명 || 투입 규모만 보면 습격이라기보다 정찰에 가깝다. 240기는 정면에서 뭘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숫자가 아니다. 그러나 이 작전의 목표는 교전이 아니었다. '''들어가서, 태우고, 나오는 것'''이었다. 그래서 편성도 그에 맞춰 짜였다. 두 개 중대 중 하나는 소각조, 다른 하나는 엄호와 퇴로 확보를 맡았고, 각 기병은 통상 휴대량 외에 석유와 도화선을 나눠 지녔다. '''기병의 위치''' 여기서 짚어 둘 것이 있다. 1880년대에 '''기병 충격 돌격의 시대는 이미 끝나 있었다.''' 후장식 소총 앞에서 밀집 기병이 달려드는 것은 자살에 가까웠고, 이건 보불전쟁에서 충분히 증명되었다. 그렇다고 기병이 쓸모없어진 것은 아니다. 역할이 바뀌었을 뿐이다. 이 시기 기병의 주 임무는 '''정찰, 전초, 추격, 그리고 습격'''이었다. 특히 후방 보급선 습격은 기병이 여전히 잘할 수 있는, 그리고 사실상 기병만 할 수 있는 임무였다. 자동차도 항공기도 없던 시대에 하룻밤에 30킬로미터를 왕복할 수 있는 병과는 기병뿐이었기 때문이다. '''하마 전투''' 또 하나 중요한 것이 '''하마 전투'''(dismounted action)다. 이 시기 기병은 말에서 내려 싸우는 훈련을 받았다. 기병 소총을 지급받고 보병처럼 사격전을 벌이다가 필요하면 다시 말에 오르는 방식인데, 할브룩 습격에서도 실제 소각 작업은 전원 하마한 상태에서 이루어졌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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